중갱

선생님, 요즘은 도통 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육 첩 방은 나의 나라[1], 심지어 저의 방인데도

빌어먹을 시라는 게 참 쉽게 쓰이지를 않더군요

은유는 달콤한 독이라 하셨지마는

그 흔한 은유 한 줄조차

좀처럼 쓸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

그러다가 또 어느새 봄을 느꼈을 땐

길게 늘어진 낮과 오후들을

조금은 원망했던 것도 같은데요

올 초엔 이상하리만치 근처 호숫가 유원지에

자주 자전거를 타러 나갔습니다

별다른 이유랄 것은 딱히 없었습니다

종하는 그게 별다르다며 저를 놀리긴 했지만요

휴지처럼 번져가는 풍경들을 훑으며

"벚나무 기둥마다 인연들은 분주히 자리를 잡고

의암호 위를 유영하는 물닭의 떼들,

소년은 그것이 훗날의 풍경 같다고도 생각했다”

이런 시구를 떠올렸다가는 다시 흘려보냈습니다

일상이 그런 식으로 계속되다가도

초여름의 윤슬 같은 것이 몇 번 일더라고,

예전에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시실에 홀로 서있는 아라가야 토기를 보곤

그 뜻을 얼추 헤아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늘어놓는 이 푸념을

시로 써내 보면 어떨까 하는

마감을 목전에 두고

이런 생각도 해 보았는데요

저는 언제나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

빌어먹지도 못할 이 시를 투고해버린

이 못난 사람을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1] 윤동주, <쉽게 씌여진 시>

(2022.6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