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목

공생: 명사, 서로 도우며 함께 삶

상생: 명사,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감

듣기에 좋은 말이다. 모두가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다니. 동화책이 위기-절정의 전개를 거침에도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결말을 보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우리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이해와 공감 모두 쉽지 않다. 만약 진정 상생, 공생이 가능하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상생이 가능하다면 두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첫째, 서로 돕기 때문에 다같이 잘 살아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잘 살아간다.’라는 것이 경제적인 것과 무관하게 사람들 간의 관계 등 비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한다면, 상생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잘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물질적인 것들을 내포한다면 서로 돕는다고 하여 잘 살아갈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빈곤층 사이의 협력, 빈곤층과 중산층, 상류층 사이의 협력이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도 있다는 기대는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과연 계층을 넘어서는 협력, 혹은 동 계층 내의 ‘서로 도움’ 자체가 과연 가능할까.

상류층을 개개인의 사람으로 보는 대신, 경제적 교류의 주체가 되는 기업으로 상정해보자. 윌리암스(Williams)라는 경영학자는 거래비용이론(transaction cost theory)에서 기업의 자원관리에 대한 의사결정은 ①기업 외부에서 자원을 공수하는 것과 ②기업 내부에서 자원을 생산하는 것 중 비용이 낮은 방향으로 선택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론을 적용한다면, 기업 내부에서 생산하는 비용 대비 발전가능성, 생산한 결과의 가치대비 높을 때, 예를 들어 미화업무나 초기 설비투자가 많이 필요한 경우 등에 한하여 교류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부가가치가 높은 부분에 관해서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생산하고자 할 것이기 떄문에 교류가 일어날 수 없다.

둘째, 다 같이 잘 살아가기 때문에, 서로 돕는 경우이다. ‘잘 살아감’이 비물질적인 것, 예를 들어 그리스도적 박애주의, 성인(聖人)들의 인격적 완성을 의미한다면 상생은 당연히 가능할 것이다. 반면, ‘잘 살아감’이 물질적인 것을 의미한다 해도 동등한 계층이면서 서로 ZERO-SUM의 관계인 경우가 아니라면 상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계층일 경우에는 그것이 ‘확실한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면 잘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상생이 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CSR차원에서의 단기적인 경우를 제외한 장기적인 상생이 어렵다고 본다.)

매번 선거마다 정치인들은 ‘상생 경제’ 를 부르짖는다. 이는 우리 사회가 상생을 ‘올바르다(RIGHT)’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상생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 20:80의 사회, 역삼각형의 구조 혹은 그보다 더 심각한 상태는 이미 도래했다. 경제적인 부는 물론이고, 사회적인 지위 등 많은 면에서 극명한 대비를 경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위 계층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좁혀지지 않는 간극으로 인한 분노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편 영화 <기생충>은 우리 사회의 구조를 기생구조로 본다. ‘기생’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기생: 명사, 생물, 서로 다른 종류의 생물이 함께 생활하며, 한쪽이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이 해를 입고 있는 일. 또는 그런 생활형태.

‘함께 산다’는 면에서는 상생, 공생과 동일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점은 이익을 한쪽만이 전유한다는 점이다. 상위계층은 하위계층을 옭아매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기생의 주체는 강자가 아니라, 약자이다. 강자와 약자의 구조가 옭아매고 있는, 즉 진행 중인 상태이며 하위계층이 ‘자신의 것’이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단계가 아니라, 이미 완결되어 고정된 구조를 전제로 한다. 기생충은 절대 숙주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생충이 할 수 있는 것은 숙주가 되는 것이 아니다. 기생충은 숙주 밖에서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은밀하게 숙주에게 들러붙어야 하며, 기생충은 숙주의 영양분을 최대한 흡수해야 한다. 숙주가 죽을 때까지 기생은 계속된다.

영화가 상정하고 있는 ‘기생 구조’는 참담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상생이나 공생은 서로에게 확실한 이익이 담보될 때 가능하다. 하위계층의 경우 상위 계층과 교류할 때 물질적인 측면에서 막대한 이익이 있는 반면, 상위계층의 경우는 Williams의 거래비용이론에서처럼, 저(低) 부가가치 분야에서의 비용감소의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즉, 많은 공급을 이루는 하위계층은 상위계층의 수요인 저 부가가치의 분야에서만이라도 생존을 위해 상위계층에 기생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익을 누린다 해도, 상위계층은 될 수 없고, 숙주가 죽는다 해도 기생 구조는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상위계층을 숙주로 삼아 생존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영화가 끝나고 영등포의 영화관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의 경우에는 매우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50대 즈음의 꼰대 아저씨로부터 기생충은 계속 기생충일 수 밖에 없다는, 듣고 싶지 않은 얘기를 들은 기분이었다. 나 또한 하나의 기생충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그리고 나도 모르는 새에 기생충을 경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의심이 짓눌렀다. 자아실현이나 가치관 등이 생존 앞에 스러질 수 밖에 없는 기생구조의 참담함을 보면서도 이론적이거나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책임도 필요치 않은 해결책들만이 떠올랐다.

영화 관람 후 바라본 영등포 역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역 앞 공터에 모여 있는 노숙자들은 숙주 밖으로 내버려진 기생체인 듯 했고, 박스를 줍는 분들은 기생구조에서 도태되어 저항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역 앞에 스티로폼 박스를 깔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겉보기에는 그저 동네 아주머니들인데, 오랫동안 지켜보니 술에 취한 남자들만을 따라다니며 말을 붙인다. 이들, 성매매 중개업자들을 보면서는 오직 생존만을 추구하여 자신만을 제외한 모두를 갉아먹는 최악의 기생구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내가 ‘생존’에 있어 기생구조보다 훨씬 확실한 ‘부모-자식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철저히 배부르고 거만한 소리일 것이다. 부모-자식의 관계는 기생관계와 달리, 숙주가 기생체를 발견함에도 자발적으로 모든 것을 내어준다는 점에서 발전된 기생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은 수없이 많지만 대부분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주로 하지, ‘내일은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현재 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참 혼란스럽다. 해결책은 보통 ‘~해야 한다’의 어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거대한 문제점들을 발견하고서도 주장할만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문제점은 한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절대 아니며, 다양한 분야가 얽혀있다. 고대의 알렉산더 대왕이 풀지 못하도록 복잡하게 묶인 매듭을 칼로 베어 푸는 것 같은 해결책은 현실에 없다. ‘하루를 어떻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기생충으로 있게 하는 구조, 그들을 감히 기생충이라고 부르는 자들을 인지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는 것과, 상생의 가능성을 믿고, ‘그들을 위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부끄러운 노력의 전부인 것 같다.. 글의 마지막까지 불쾌하다.

(2019.7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