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리"하는 느낌이 가장 많이 드는 것 같아. 연말은 그 해의 끝이자 다음 해를 맞이할 목전에 있으니까, 올해를 돌아보고 또 다시 먹는 한 살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다짐하게 되지.📆
그런데 모든 오우너가 들뜬 마음으로만 연말을 보내진 않을 거야. "나 올해 뭐했지?"하는 마음도 들 수 있고, "왜 아직도 이 모양일까? 왜 나아지지 않은 걸까?" 같이 자책을 하고 있을 수도 있어.😔
그래서 오늘은 그런 오우너들을 공감해줄 작가 누리의 <불안함>을 가져왔어. 이 에세이에서 작가는 자기의 뚜렷한 기준이나 소신 없이 매번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에서 불안함을 느낀다고 해. 올해를 불안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는 오우너들과는 얼마나 비슷하고 어디부터 다른 모양의 마음일까?
지금 바로 읽어줄게! 📖
불안함
누리
우리 이모네는 사촌 언니와 오빠가 모두 20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어린이날 선물을 챙긴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새로운 보드게임 하나. 그래서 우리 가족은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이모집에 놀러가 보드게임을 자주 같이 했다. 다른 것들도 그렇지만 특히 ‘모노폴리’를 하면 거래할 일이 생겼다. “버지니아랑 커네티컷에 500 얹어줄 테니까 애틀랜타랑 일리노이 줄래?” 하는 식으로. 그런 상황이 나에게는 호텔이 세워진 파크플레이스와 보드워크를 연속으로 걸리는 것보다 더 난감하게 느껴졌다. 어떤 게 나에게 손해인지, 나에게 유리한 상황이라는 게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착하게 사는 게 제일 편하게 사는 거야. 이처럼 나에게 딱 맞는 말이 있을까. 어려서부터 어리숙했던 나는 아직도 이것 저것 재고 살피는 재주가 없다. 그래서 주어진 대로, 하라는 대로 행동하기를 고집했다. 어릴 때는 더 심해서 알림장에 적힌 그대로 준비해 가지 못하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굴었다. 적당히 처신하고 싶어도 ‘적당히’란 무엇인지를 몰라 정석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가 서기를 맡은 적이 있다.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지각 체크를 시키셨고, 나는 아주 꼼꼼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그때 내가 항상 뱉은 말은 “너 한 명 봐주면 다 봐줘야 해.” 였지만 사실은 어떤 사정들을 어떤 기준으로 용인해주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판단 기준은 신뢰할 수 없어. 정해진 것. 하나의 기준. 거기에만 의지하면 돼. FM이 받는 건 불평이지 질타가 아니니까.
그렇게 이견의 여지가 없는 확신에 둘러싸여 불안함을 모르고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낯선 곳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을 때에서야 알아차렸다. 이제는 누군가 정해준 기준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세상은 그야말로 거대한 상대성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 상대성 속에서 오히려 나는 설 곳을 잃어버린 듯했다. 그곳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둘 중 한 가지 모습이어야 하는 것 같았다. 완고함과 유연함.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적정선을 찾지 못하고, 나의 기준을 벗어난 사람들과 그 모습을 때로 눈감고 지나가는 나 자신 모두에게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들을 모두 상대할 힘은 없지만 그들을 모두 받아들이기에는 예민하다.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기준인지 몰라 오히려 강경했던 몇 년 전의 나처럼 지금의 나도 심지 굳은 청년의 모습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상은 살아온 어느때보다 유약하다.
강인해지고 싶다. 확신을 갖고 싶다. 그 모습이 올곧은 대나무이든 부러지지 않는 갈대이든 뿌리가 든든한 이가 되고 싶다. 언젠가 지금 스물다섯의 불안을 미소로 돌아볼 수 있을 그 날을 기다린다.
(2021. 02 씀)
오운이가 오늘 읽어준 에세이,「불안함」어땠오운?
1️⃣ 마지막 문단에 담긴 작가의 의지가 돋보였어! 이미 작가는 든든한 사람인 것 같은데?! 😏
2️⃣ 코미디언 故 박지선씨의 말이 떠오르는 글이었어! 그녀도 본인에 대한 확신이 없어 남이 시키는 것에 의존하는 삶을 살았지만, 결국 본인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 감동적이었거든.
3️⃣ 누군가는 착하게, 누군가는 조금 약게 살라고 하는 정말 이도 저도 못하겠는 세상이야. 아아-! 세상아-! 어쩌란 말이냐!! 👿
「불안함」의 글쓴이, 누리와의 인터뷰를 가지고 왔어!
🦉: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들로 인해 불안함을 느꼈는지 궁금해오운!
👤: 어느 한 가지 사례라기 보다 제가 마주친 모든 상황들이 그랬어요. 제가 봤을 때는 정말 아닌 행동인데, 그걸 아니라고 해버리면 현실감각 없이 꽉 막힌 사람이 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맞고 틀리고의 경계가 모호해지다 보니 제 중심이 흔들리는 불안을 느꼈던 거죠.
🦉: 누리 작가님이 이 글을 쓸 당시에 상상했던 ‘강인하고 심지 굳은 청년‘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 자신이 세운 올바름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이었어요. 조선시대의 선비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유교 법도를 고지식하게 지키는 선비처럼 곁눈질하지 않는 거요.
🦉: 불안함을 극복할 자기 확신의 원천을 찾았는지 궁금하다운!
👤: 다행히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다양성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니까 오히려 제 내면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 불안함을 극복하기에 무엇이 가장 필요한 것 같으신가요? 작가 누리님의 의지 외에 다른 것이 있다면 알고 싶다운!
👤: 소통과 교류라고 생각해요. 결국 제가 불안을 느낀 것도 저만의 기준과 타인의 기준 사이의 간극에서 빚어진 거거든요. 세상엔 다 이상한 사람 뿐이다, 싶었어요. 근데 얘기를 나눠보면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또 별로 없더라고요. 그걸 깨닫지 못하면 내가 이질적인 존재 같다는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 마지막으로 이 글이 쓰인지 오래 지난 지금, 글이 쓰일 시점에 불안해하던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 조급해하지 마.
다섯 개의 질문을 통해 글 뿐만 아니라 작가 누리에 대해서도 더 알 수 있게 된 것 같아! 여린 듯 하지만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정석이 아닐까?